포항은 39년 동안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전국 일주를 했을 때도 강원도에서 바로 울산으로 넘어가면서 포항을 건너뛰었다. 별 기대 없이 갔던 도시였는데, 1박 2일 만에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다. 과메기 때문에 갔다가 포항 자체에 반해서 돌아왔다.
과메기 때문에 포항에 갔다 — 1박 2일 여행 동기
양양에서 포항까지 차로 3시간. 겨울 한파경보가 뜬 날, 체감 영하 20도. 왜 이 날씨에 포항까지 갔냐면, 덕이가 과메기를 먹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과메기는 12월부터 2월 사이가 제철이다. 짝꿍은 과메기를 좋아하는데 나는 불호였다. 부부가 둘이 사니까 한 명이 안 먹으면 그 음식을 집에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과메기가 철인 겨울에, 원조 산지인 포항 구룡포로 직접 가서 도전해보자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포항 여행의 목표는 초과 달성했다. 과메기 불호였던 내가 반 마리를 먹었다. 그리고 포항이라는 도시 자체에 완전히 반했다.
이가리 닻 전망대 — 한파가 만든 예상치 못한 풍경
포항 시내로 내려가는 길에 먼저 들른 곳이 이가리 닻 전망대 다. 위에서 보면 닻 모양으로 생긴 전망대가 바다 위로 쭉 뻗어 있다. 방향은 독도 쪽, 251km 떨어진 곳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이날 한파 경보 때문에 파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돌에 파도가 부딪히면서 바다 위로 무지개 가 떴다. 포르투갈 나자레에서 봤던 세계에서 가장 큰 파도가 떠올랐다. 여기도 그 정도였다. 전망대가 파도 칠 때마다 흔들려서 무서울 정도였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평소에는 보기 힘든 풍경을 봤다.
포항에 볼 게 많아서 들른 게 아니라 양양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어서 들른 곳인데, 결과적으로 만족도 최상이었다.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 먹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
구룡포는 과메기의 원조다. 전국 시장 과메기의 90% 이상을 점유한다. 무언가를 처음 먹어보려면 원조에서 먹어야 제대로다.
과메기 먹기 전에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입장 무료)을 먼저 들렀다. 과메기가 원래는 꽁치가 아니라 청어 로 만들었다는 것, 식객 만화에도 등장한 구룡포의 역사 같은 걸 알 수 있다.
과메기 문화관 옆에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 가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어업인들이 한국 어업권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 살았던 거리다. 아픈 역사지만 교육장으로서 보존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거리 안에 추억의 불량식품 가게, 동백 사진관 같은 곳이 있어서 30~40대에게는 타임머신 같은 공간이 된다. 아폴로, 색깔 바뀌는 사탕, 딱지, 종이 인형까지. 실제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과메기 먹기 전 워밍업으로 딱이다.
엘토르 구룡포 과메기 + 숙소는 바로 뒷건물
점심때 구룡포에서 먹을까 고민했지만, 숙소를 과메기 집 바로 뒤 호텔 로 잡았기 때문에 시내로 내려와서 저녁에 먹기로 했다.
숙소는 스위스벨라호텔 포항 죽도점 . 1박 45,000원. 죽도시장 바로 옆이고, 과메기 집까지 걸어서 16미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방은 크지 않지만 깔끔했고, 과메기 먹고 바로 들어와 쉬기에 최적이었다.
과메기 집은 엘토르 구룡포 과메기 . 청어와 꽁치 반반으로 주문했다. 한 상에 5만 원.
그리고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불호였던 내가 과메기에 반했다.
이유는 이랬다. 그동안 마트에서 샀던 과메기는 비린내가 강했는데, 여기 집 과메기는 참기름을 발라놨는지 고소한 향이 먼저 올라왔다. (확인해 보니 참기름이 아닌 과메기 자체 기름이라고 한다.) 하나도 딱딱하지 않고, 질기지 않고, 기름이 지는 게 딱 내 스타일이었다. 작게 잘라서 먹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늘, 청양고추 비슷한 알싸한 고추, 미역까지 싸서 먹으니 비린내는 거의 사라지고 고소함만 남았다. 원래 고추를 안 먹는데 이 집에서는 고추도 처음 먹었다. 그 정도로 궁합이 좋았다.
과메기 한 마리 반을 나눠 먹었다. 과메기 불호였던 사람이 반 마리를 먹으면 여행 성공이다.
둘째 날 새벽, 호미곶 일출 —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다음 날 새벽 5시 30분 기상. 포항에서 꼭 가봐야 한다는 호미곶 으로 출발.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고, 유명한 “상생의 손 ” 조각상이 바다 위에 떠 있다.
7시 20분, 일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두 개의 손 조각상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장면은 그동안 본 일출 중에 가장 예뻤다. 가장 가까이서 본 일출이기도 했고, 조각상이 있어서 보는 재미가 더 있었다.
양양에도 이런 조형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 — 추위 녹이는 한 그릇 6,000원
호미곶에서 새벽 추위에 얼어붙은 손가락을 녹이러 죽도시장 으로 갔다. 포항 최대 전통시장이다. 고등어는 방어급으로 크고, 문어는 말도 안 되는 사이즈였다. 우리 집 옆 수산시장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시장 안에 수제비 골목 이 따로 있다. 칼제비, 수제비, 칼국수 전 메뉴 6,000원 이다. 추위에 덜덜 떨다가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까 몸이 풀렸다. 깍두기가 신 깍두기여서 수제비랑 완벽하게 어울렸다.
시장 구경하다가 찹쌀도너츠 3개 + 사라다빵 1개 추가 주문. 그리고 김도 샀다. 3장에 5,000원. 요즘 술안주로 김을 먹기 시작해서 김을 많이 사 오게 됐다.
죽도시장은 포항 와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수제비 골목은 특히.
스페이스워크 — 무료, 그리고 고소공포증 테스트
마지막 코스는 스페이스워크 . 포항 환호공원 안에 있는 거대한 철제 구조물 위를 걷는 무료 시설이다. 바닷가 옆 언덕 위에 설치되어 있어서 전망이 훌륭하다.
문제는 짝꿍이 고소공포증이 있다 는 것. 한 번 해보겠다고 올라갔는데, 중간쯤에서 “내려갈래” 소리가 나왔다. 나도 올라가면서 “이게 떨어지면 아프겠지, 그래 봤자 죽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겨우 버텼다. 바람이 부니까 구조물이 흔들려서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래도 멋있었다. 무료인데 이 정도 퀄리티의 구조물은 한국에서 찾기 힘들다. 놀이기구를 못 타는 사람도 한 번은 시도해볼 만하다.
포항 1박 2일 여행, 솔직한 총평
과메기 때문에 갔다가 포항이라는 도시에 반해서 돌아왔다.
39년 동안 안 가본 게 아까울 정도였다. 영일만 야경, 박물관, 미술관, 전망대까지 못 간 곳이 한참 많다. 다음에 또 오게 될 도시다.
왜 이 도시가 국내 여행지로 저평가돼 있는지 의문이다. 강릉, 속초, 부산은 콘텐츠가 넘치는데 포항은 비어있다. 바다, 음식, 역사, 전망 네 가지를 다 가진 도시인데 말이다.
포항 1박 2일 여행 꿀팁 정리
과메기는 구룡포에서. 전국 과메기 90%가 여기서 나온다. 원조 산지에서 먹어야 차원이 다르다. 제철은 12~2월.
과메기 불호라면 문화관 먼저. 알고 먹으면 훨씬 맛있다. 입장료 무료.
숙소는 과메기 집 바로 뒤. 스위스벨라호텔 포항 죽도점은 죽도시장, 과메기 거리 모두 도보 5분 이내. 1박 45,000원.
엘토르 구룡포 과메기. 청어/꽁치 반반으로 주문하면 두 맛을 비교할 수 있다. 한 상 5만 원.
호미곶 일출은 새벽 6시 30분 출발. 7시 20분 일출 시간 맞추려면 여유 있게 움직여야 한다. 한파 주의.
죽도시장 수제비 골목. 전 메뉴 6,000원. 추위 녹이기에 최적.
스페이스워크는 무료. 고소공포증 있으면 중간까지만.
이가리 닻 전망대. 양양/강릉에서 내려올 때 들르기 좋다. 한파나 태풍 온 날에는 파도가 장관이다.
영상으로 보면 더 생생합니다
글로는 다 담지 못한 포항의 파도, 과메기 먹는 순간의 표정, 호미곶 일출, 스페이스워크에서 짝꿍의 고소공포증 반응까지 — 이 모든 장면이 영상에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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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바다덕(BADADUCK) 유튜브 채널의 국내여행 시리즈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