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나라 여행 좀 하고 가을에 다시 뉴욕으로” 뉴욕의 마지막 아침이었다. 무비자 90일이 하루 남아 있었다. 우리가 미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짝꿍과 새로 생긴 동네 공원에 앉아…
“다음 나라 여행 좀 하고 가을에 다시 뉴욕으로”
우리가 떠나기 직전 오픈한 이스트 리버 파크. 강 건너로 덤보가 보인다.
뉴욕의 마지막 아침이었다. 무비자 90일이 하루 남아 있었다. 우리가 미국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짝꿍과 새로 생긴 동네 공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여보는 뭐가 제일 아쉬워?”
“내일 가는 거.”
이 글은 지난번 맨해튼에서 한 달을 살아본 후기의 마지막 날 기록이다. 미국 무비자 90일이 끝나는 하루 전날, 우리는 JFK 공항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 칸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환승해서 도착한 곳은 플라야 델 카르멘(Playa del Carmen). 카리브해의 작은 휴양 마을이었다. 뉴욕을 떠나는 이유와, 멕시코에서 새로 시작하는 일상의 첫날을 기록한다.
뉴욕 마지막 만찬 — 새로 생긴 이스트 리버 파크
마지막 만찬은 쉐이크쉑 버거. 한 달 동안 가장 마음에 들었던 풍경.
뉴욕을 떠나기 전 마지막 만찬을 정했다. 메뉴는 쉐이크쉑 버거. 우리는 동네 공원에서 햄버거를 사 들고 강가 벤치에 앉았다. 거기는 우리가 머물던 한 달 동안 새로 오픈한 이스트 리버 파크(East River Park)였다.
“한 3년 공사 있고요. 너무 깨끗하고 넓고.”
“와 맨해튼 스카이라인 다 보이고 건너편에 덤보랑 브루클린 보이고.”
“여기가 내가 떠날 때쯤 생겼다니 좀 아쉽다.”
집에서 도보 5분. 짝꿍이 콜라 끊기 운동 중이라 한산수를 챙겨왔다. 우리 앞으로는 윌리엄스버그 다리가 보였고, 다리 너머로는 맨해튼 스카이라인과 브루클린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이 공원 다 좋은데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열차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거야.”
“아 뉴욕 가서 진짜 쉐이크쉑의 재발견이라니까.”
햄버거가 진짜 너무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마지막 만찬에 어울리는 강가 풍경, 어울리는 메뉴. 우리가 한 달 동안 맨해튼에서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풍경이 마지막 날에 비로소 완성되는 기분이었다.
이스트 리버 파크는 우리가 한 달 동안 이용했던 동네 공원 중 가장 새 곳이었다. 3년 공사 끝에 우리가 떠나기 직전 오픈한 공원. 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 산책로, 푸른 잔디밭, 잘 정돈된 바비큐장까지. 한국이라면 입장료를 받아도 될 만한 시설이었지만 뉴욕은 모두 무료였다. 이런 게 뉴욕의 진짜 매력이었다. 비싼 도시지만 시민을 위한 공간은 아낌없이 만들어 놓는 곳.
미국을 떠나야 하는 진짜 이유
“다른 데를 가고 싶어서 간다기보다 무비자 90일이 얼마 안 남았어요. 어쩔 수 없이 갑니다.”
“사실 저희는 미국이 허락해 준다면 더 그냥 여기 여행하고 싶거든요.”
미국 무비자(ESTA) 체류 한도는 90일이다. 우리는 그 90일 중 89일째에 미국을 나가는 중이었다. 하루 전날에 나가는 거다. 미국 입국 관리사무소에서 며칠까지 나가라고 메일까지 정확히 보내준다. 단 하루도 넘기면 안 된다.
“이 나라에서 우리가 받아줄지 모르겠어.”
“다음에 만약에 오게 되면 저 바베큐장을 한번 이용해 보자.”
가을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게 목표였다. 그때는 브루클린 너머 동부를 한번 싹 이렇게 여행해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한 번 나가야 한다. 90일 시계가 다시 0부터 시작되려면 미국 밖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야 했다.
“뉴욕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호스트 친구 커플과 어제 저녁을 먹었다. 친구들이 물어봤다.
“뉴욕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요?”
“대답할 수 없었어. 다 좋았어.”
“제일 좋은 건 없었어. 다 좋았고 좋지 않은 게 없었을 뿐이야.”
“뭐 물가가 안 좋았어.”
“아, 물가 안 좋은 거 있었네.”
물가 빼고는 진짜 좋은 게 너무 많았다. 40개국을 다닌 부부가 한 달 살이 한 도시 중에 가장 마음이 무거운 작별이 뉴욕이었다.
“아 이제 갈 때가 됐어서 가야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는 그 상황 자체가 힘들어.”
“한 달을 지냈는데도 못 본 게 많아요.”
이게 뉴욕의 진짜 매력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있어도 부족한 도시. 맨해튼만 해도 본 게 일부였고, 브루클린도 절반밖에 못 봤다. 한 달이 결코 짧지 않은데, 뉴욕은 한 달도 짧다고 느끼게 만드는 도시였다. 다음에 다시 오면 무엇부터 할지 메모해두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JFK 공항 비행기 – 생각보다 긴 수속시간
JFK 공항 새벽 체크인. 캐리어 다 세워주는 시스템 때문에 한 시간 걸렸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짐을 정리했다. JFK 공항까지는 에어트레인을 탔다. 새벽이라 좀 위험할 수도 있어서 우버를 알아봤는데 금액대가 너무 비싸서 결국 지하철로 갔다.
캐리어 체크인할 때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모든 캐리어를 다 세워 주시는 시스템이라 그런 것 같았다. JFK는 보안이 까다로운 공항으로 유명하다. 수속에만 한 시간 이상 잡고 가야 안전하다.
“체크인할 때 한꺼번에 하고 마지막에 탑니다. 그래서 참 앉아 있었어.”
비행기는 마지막에 탔다.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JFK에서 칸쿤까지는 약 4시간 30분. 칸쿤 국제공항에서 환승해서 플라야 델 카르멘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한 달 동안 정신없이 다녔던 뉴욕을 천천히 정리했다. 동네 카페, 자주 가던 슈퍼마켓, 매일 저녁 산책했던 강변. 짝꿍은 옆에서 잠들었다. 새벽 3시부터 시작한 하루가 너무 길었다. 여행에서 가장 길게 느껴지는 날은 항상 도시를 떠나는 날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칸쿤 도착, 그리고 첫 멕시코 인상
칸쿤 국제공항 도착 직후. 뉴욕의 무거운 작별이 카리브해 햇살로 한 번에 씻겼다.
칸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공기부터 달랐다. 뉴욕의 5월 새벽 공기와 칸쿤의 한낮 공기는 같은 대륙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공항에 도착해서 환전부터 했다. 멕시코 페소가 필요했다.
“너무해. 10%나 차이가 나네.”
“근데 안 바꿀 수가 없어요.”
공항 환전 수수료 10% 차이. 그래도 멕시코 현금이 필요해서 안 바꿀 수가 없었다.
공항 환전 수수료가 시중 환율보다 10% 차이 났다. 그래도 안 바꿀 수가 없었다. 짝꿍이 알아본 바로는 멕시코는 현금을 쓰는 데가 많다고 했다. 카드만 들고 가면 곤란할 수 있어서, 공항에서 나가기 전에 미리 어느 정도 환전해두는 게 안전했다.
“수수료가 또 빠져요.”
수수료까지 빠지니 손에 들어오는 페소가 더 줄었다. 이게 공항 환전의 함정이다. 그래도 칸쿤 도착 직후 바로 쓸 수 있는 현금이 손에 있는 게 더 중요해서 감수했다.
“날씨가 너무 예쁘다.”
“저는 사실 뉴욕에서 떠나기가 너무 싫었어 가지고 좀 아 뭐 몰라 뭐 이러면서 왔는데, 어 되게 설레이네.”
“날씨가 너무 예쁘고 그냥…”
뉴욕의 무거운 작별이 칸쿤의 햇살로 한 번에 씻겼다. 짝꿍의 표정이 바뀌었다. 여행자에게 날씨는 마음을 바꾼다.
칸쿤은 호텔이 모여 있는 큰 휴양 도시인데, 우리의 목적지는 거기가 아니었다. 칸쿤 호텔존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간 플라야 델 카르멘(Playa del Carmen).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작은 마을이라고 했다. 칸쿤 공항에서 플라야 델 카르멘까지는 택시·합승 셔틀·버스 세 가지 옵션이 있었다.
“그냥 저희는 안전하게 버스 타고 가려고요.”
칸쿤 공항에서 플라야 델 카르멘까지 ADO 버스 2명 510페소(약 38,000원).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합승은 부담스러웠고, 택시는 비쌌다. 결국 버스(ADO 버스)가 가장 안전했다. 2명 기준 510페소, 약 38,000원이었다. 1인 19,000원이면 1시간 거리 이동치고는 합리적이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칸쿤 공항 밖에서 처음으로 멕시코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카리브해의 습기가 가득한 공기에 야자수 그늘이 더해져서 이미 휴양지 분위기였다. 공항 도착 첫 시간이 그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한다고들 한다. 칸쿤은 그 첫인상부터 우리를 환영해주는 도시였다.
플라야 델 카르멘 첫인상 — “여기가 멕시코 맞아?”
플라야 델 카르멘 첫인상. 스페인 식민지 흔적과 카리브해 분위기가 묘하게 섞인 도시.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플라야 델 카르멘에 도착했다.
“저희가 멕시코를 처음 오다 보니까 이…”
“멕시코라고 생각 안 할 정도로…”
생각보다 깨끗했다. 길이 잘 닦여 있었고, 가게들도 정돈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본 멕시코 이미지와 달랐다. 여행자들이 많이 오는 도시라 도시 자체가 여행자에게 맞춰 진화한 곳이라는 게 느껴졌다.
도착 후 첫 일정은 숙소 체크인이었다. 짐을 풀고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봤다.
“관광지라서…”
“멕시코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서 건물들이 다 예쁘죠.”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었다. 컬러풀한 외벽, 둥근 아치형 문, 작은 광장. 멕시코 본토의 첫인상은 우리가 알던 어떤 라틴 아메리카 이미지와도 달랐다. 유럽 분위기와 카리브해 분위기가 묘하게 섞인 도시.
멕시코 첫 맥도날드 — 관광지 가격의 진실
멕시코 첫 맥도날드. 관광지답게 한국과 비슷하거나 살짝 비싼 수준이었다.
도착 첫날이라 부담 없는 식사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고른 곳은 맥도날드였다.
“멕시코의 맥도날드 물가 어떤지 한번…”
“멕시코 첫 맥도날드. 어 멕시코를…”
“거 보니까 멕시코 영어 실력 나네.”
세계 어딜 가도 맥도날드가 그 나라 물가의 기준이 된다. 우리는 그 동네 맥도날드 가격으로 멕시코 물가의 첫 감을 잡았다. 관광지답게 한국 맥도날드와 비슷하거나 살짝 비싼 수준이었다. 멕시코시티 같은 본토 도시의 1/2 가격으로 알려진 곳들과 달리, 플라야 델 카르멘은 관광지 프리미엄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 맥도날드에만 있는 할라피뇨 소스는 우리를 설레게 했다
“오늘은 체크인하는 걸 목표로 이것도…”
첫날은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체크인하고, 환경에 적응하고, 첫 맥도날드 한 끼. 그게 다였다. 여행을 길게 하다 보면 도착 첫날의 정답은 늘 같다. 무리하지 않기.
멕시코의 첫 멕시칸 음식 — 도리토스 같은 토르티야
멕시코의 진짜 첫 멕시칸 음식. 도리토스 같은 토르티야와 향기로운 매운맛.
저녁이 되어 숙소에서 배달을 시켰다. 숙소 첫날부터 외출하기엔 너무 피곤했다. 멕시코의 진짜 첫 멕시칸 음식은 결국 배달로 만났다.
“되게 특이한 맛이 있어.”
“진짜 맛있어. 도리토스 같아.”
“도리토스 과자를 여기에다 넣은 거네.”
“이거 매운 것도 뿌려야겠다.”
토르티야가 우리가 한국에서 알던 도리토스 과자 같은 식감이었다. 알고 보니 도리토스 자체가 멕시코의 토르티야 칩에서 유래한 거였다. 우리는 그동안 멕시코 음식을 한국식으로 변형된 형태로만 알고 있었던 거다.
“매운데 진짜 맛있어. 응.”
“진짜 맛있다.”
“뭐야? 너무 맛있잖아.”
첫 멕시칸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매운맛도 한국 매운맛과 결이 달랐다. 얼얼한 매운맛이 아니라 향기가 살아있는 매운맛이었다. 우리가 충칭에서 만난 마라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매운맛이다.
배달 음식 하나에 멕시코 첫인상이 결정됐다. 여행자에게 첫 식사는 그 나라의 명함이다. 우리는 멕시코의 명함을 좋게 받았다. 도리토스 같은 토르티야 칩, 향이 살아있는 살사 소스, 부드러운 토르티야 빵까지. 다음 날부터는 길거리 타코를 직접 찾아다니자고 약속했다.
미국에서 멕시코로, 90일이 시작되는 첫날
뉴욕에서 출발해 칸쿤을 거쳐 플라야 델 카르멘에 도착하기까지 약 12시간. 새벽 비행기를 탔는데 도착해서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또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진짜 멕시코 일상이 시작될 거다. 지금은 시간 차이와 피로 때문에 머리가 아직 뉴욕에 머물러 있었다. 한 달을 보낸 도시는 그렇게 쉽게 떠나지지 않는다.
“뉴욕을 떠나서 아쉬운 거 내가 아 이제 갈 때가 됐서 가야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가는 그 상황 자체가…”
마지막에 짝꿍이 부른 노래는 멕시코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곡이었다. 새 챕터가 시작되는 노래. 우리는 침대에 누워서 그 노래를 들으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며칠을 머물 예정이었다. 그 다음에는 멕시코시티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또 다른 멕시코의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리브해의 작은 마을, 마야 문명의 흔적, 그리고 멕시코시티의 거대한 도시까지. 한 나라 안에서도 너무 다양한 모습이 펼쳐질 거라는 걸 우리는 첫날 이미 예감했다.
미국에서 보낸 90일이 끝났다. 이제 멕시코의 90일이 시작이었다.
뉴욕의 묵직한 회색과 플라야 델 카르멘의 가벼운 파스텔. 같은 부부가 같은 캐리어를 들고 하루 사이에 완전히 다른 세계로 옮겨 왔다. 새벽 4시에 떠났던 도시가 12시간 만에 다른 대륙의 휴양 마을로 바뀌어 있었다. 비행기 한 번이 만든 변화였다. 이게 장기 여행자의 일상이다. 한 달이 끝나면 다음 도시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항상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날 밤 처음 만난 멕시칸 음식 앞에서 그 정리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새로운 90일의 첫 페이지가 열릴 거였다. 그리고 그 페이지에 어떤 이야기가 적힐지는 아직 우리도 몰랐다.
📺 영상으로 보면 더 생생합니다
이스트 리버 파크에서 본 맨해튼 스카이라인의 마지막 풍경, 우리가 나눈 “뉴욕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대화, JFK 공항 새벽의 환전과 한 시간짜리 체크인 줄, 칸쿤 공항을 나서며 짝꿍의 표정이 바뀐 순간, 그리고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만난 진짜 첫 멕시칸 음식까지 —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분위기가 영상에 있어요.